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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세습 경영, 무조건 악인가? (feat.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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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경영, 무조건 악인가?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이유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물림' 혹은 '세습'이라는 단어는 종종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특히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능력과 무관하게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거대 기업의 운전대를 잡는 2세, 3세 경영인들을 보며 많은 이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금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사회 양극화의 단면을 목도한다. 이러한 현상은 부모의 후광을 업고 아무런 노력 없이 부와 명예를 누리는 듯한 인상을 주며, 세습 경영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세습 경영은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할 절대악에 불과할까?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던 왕위 역시 세습되었다. 백성의 투표로 왕을 뽑지 않았지만, 우리는 세종대왕과 같은 위대한 성군을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반면, 폭정으로 백성을 고통에 빠뜨린 연산군과 같은 폭군도 존재했다. 이는 세습이라는 제도 자체가 선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이어받는 사람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결과가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업의 경영 승계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후계자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기업은 물론, 수많은 임직원과 협력업체,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에 큰 손실을 초래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뛰어난 능력과 비전을 갖춘 인재가 경영권을 이어받는다면, 강력한 리더십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기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독재와 민주주의가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습 경영 역시 그 자체의 명암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양날의 검과 같다.


세습 경영의 그림자: 검증되지 않은 권력의 위험성

세습 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검증 과정의 부재'에 있다.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사원에서 시작해 대리, 과장, 부장을 거치며 수많은 경쟁과 평가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임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소위 '황태자'로 불리는 재벌 2, 3세들은 이러한 과정 없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경영권을 손에 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과정은 공정성 시비를 낳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심각한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충분한 실무 경험과 경영 능력,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지 못한 리더가 단지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업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 때,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잘못된 투자 결정 하나로 수십 년간 쌓아온 기업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으며,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안일함은 기업을 도태의 길로 이끌 수 있다.

더욱이 창업주 세대가 겪었던 절박함과 '맨땅에 헤딩'하는 도전 정신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후계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이는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 속에서 기업이 혁신과 성장의 동력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한진그룹의 사례처럼, 경영 능력이 부족한 오너 일가의 독단적인 경영과 연이은 갑질 논란은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결국 기업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세습 경영의 어두운 단면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차라리 망하게 두자고? 위험한 파괴론

일각에서는 이런 기형적인 재벌 문화를 없애기 위해 "무능력한 2세가 차라리 회사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 낫다"는 과격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낡고 부패한 구조가 무너진 자리에 새롭고 혁신적인 신생 기업이 나타나는 '창조적 파괴'를 기대하는 것이다. 핀란드의 노키아가 몰락한 후 수많은 스타트업이 태동하며 경제 체질이 바뀐 사례를 근거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경제 현실을 간과한 위험한 주장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기업은 단순히 한 가문의 사유물이 아니다. 그곳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 투입되었고, 법인세 감면, 법률적 특혜, 기술 지원 등 막대한 국가적 지원이 투자되었다. 즉, 대기업은 일종의 '사회적 자산'이자 '국가적 자산'의 성격을 띤다. 이런 기업을 단순히 오너 일가가 무능하다는 이유로 무너뜨리는 것은 개인의 재산을 넘어, 수십 년간 축적된 국가적 자산을 허공에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

또한, 현재의 거대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도태되었을 때 그 빈자리를 신생 기업이 즉시 대체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이 구축해 온 글로벌 공급망, 수많은 협력업체 생태계, 그리고 대규모 고용은 한순간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기업의 몰락은 연쇄적인 도산과 대량 실업 사태로 이어져 국가 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인구가 우리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경제 규모가 다른 핀란드의 사례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왕관의 무게를 견딘 리더: 책임경영과 장기적 비전

반면, 세습 경영의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가장 큰 장점은 강력한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책임경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전문경영인의 경우, 임기 동안의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거나 위험 부담이 큰 장기 투자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기업을 이끌어가는 오너 경영인은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기업의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할 수 있다.

이는 경영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CEO가 자주 교체되는 기업에서는 경영 철학이나 전략 방향이 수시로 바뀌면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대를 이어 경영하는 경우, 창업주의 경영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일관된 비전을 가지고 기업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삼성그룹의 고(故)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세습 경영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경영권 승계 과정은 편법 증여 논란 등 비판받을 지점이 많다. 그러나 그의 경영 능력과 성과까지 폄하하기는 어렵다.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그는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통해 삼성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반도체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삼성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이자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만약 이건희 회장이 단기 실적에만 연연하는 전문경영인이었다면,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사업에 그토록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었을까? 이는 오너 경영인이었기에 가능한 결단이었으며,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삼성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대의 세종대왕을 기다리며: 능력과 윤리가 답이다

결론적으로 세습 경영은 그 자체로 선악을 규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왕위를 계승하더라도 세종대왕이 될 수도, 연산군이 될 수도 있듯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후계자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윤리의식이 가장 중요한 핵심 변수라 할 수 있다.

대기업을 무너뜨리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상, 우리는 세습 경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재벌 가문은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물려주는 구시대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후계자가 그 자리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객관적이고 철저하게 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오랜 기간 다양한 부서에서 실무 경험을 쌓게 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투철한 윤리의식을 갖추는 것도 필수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국민에게 존경받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세습 경영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세습 경영을 '불공정한 특혜'로만 치부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왕관의 무게를 기꺼이 견디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는 '현대의 세종대왕'과 같은 2세, 3세 경영인이 나타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자리에 오르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삼성의 창업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세습 경영의 한 사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이재용의 삼성을 전혀 옹호하는 입장이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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